[윤중강의 뮤지컬레터]‘어린이무용’ 최승희와 박성옥, 그리고 리틀 엔젤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어린이무용’ 최승희와 박성옥, 그리고 리틀 엔젤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2.01.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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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1931년 5월 1일, 제 3회 최승희 신작발표회가 열렸다. 단성사에서 사흘간 열린 무용발표회에선 ‘어린이무용’이 무용이란 이름으로 두 개의 레퍼토리가 초연되었다. ‘나는’과 ‘앞으로 앞으로’는 각각 솔로(조영숙)와 듀오(이정자, 조영숙). 1931년 9월 1일, 제 4회 최승희 무용발표회에서도 두 작품이 계속 발표되었는데, 후자는 ‘어린 용사’라는 이름의 트리오 (곽경신, 이정자, 조영숙)로 공연되었다. 

최승희는 북한에서 ‘조선민족무용기본’(1958년), ‘조선아동무용기본’(1963년)을 출판하다. 재일무용가 백홍천은 일찍이 평양을 왕래하면서 최승희춤의 정통을 계승했고, 이를 일본과 한국에 이를 바로 알리는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백홍천에 의하면, 최승희는 전문가와 일반인, 학생과 아동 등을 구분했고, 1931년부터 각각의 수준에 맞게 무용을 즐길 수 있도록 연구해왔다고 한다. 일찍이 아동무용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했다는 점에서도 최승희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한반도의 북쪽에서 최승희가 아동무용에 관한 책을 출판할 무렵, 남쪽에서도 어린이무용단이 체계를 갖추면서 활동을 계기했다. 1962년에 창단된 ‘선화어린이무용단’이다. 해외공연을 통해서 ‘리틀 엔젤스’가 불린 이 단체는 올해로 창단 60주년을 맞는다. 1965년 해외공연을 시작으로 해서 약 10년간 리틀엔젤스의 해외공연은 괄목할 만하다. 기성무용계 또는 성인무용이 해내지 못했던 영역을 개척해서, 한국의 문화적 수준을 세계에 알렸다. 

리틀엔젤스는 어떻게 어린이무용 레퍼토리를 정착할 수 있었을까? 거기엔 박성옥 (1908 ~ 1983)이란 인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해방공간까지 크게 활약한 무용가 최승희, 조택원, 장추화의 발표회에 박성옥의 무용음악이 있었다는 건 널리 잘 알려진 사실. 

박성옥은 여성국극의 음악에도 큰 역할을 했다. 여성국극의 최초의 히트작 ‘햇님과 달님’(1949년)과 한국전쟁 시 부산에서 공연한 ‘가야금’(1951년, 동아극장)의 음악은 박성옥이다. 박성옥은 이미 전쟁 전부터 부산에서 뿌리를 내렸다. 일제강점기 한성준은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개설했는데, 한국전쟁기 박성옥은 ‘대한음악무용연구소’를 개설(부산 충무동 3가)을 했다. 1954년 12월 20일, ‘대한음악무용연구소’의 제 1회 신작무용발표회에 관한 리뷰(부산일보)가 실렸다. 박성옥을 ‘고전악무(古典樂舞) 양도(兩道)에 일가’를 이룬 인물로 평가하며, 특히 ‘10세 전후의 어린 세대의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두고 있다. 
당시 박성옥이 부산에 발표한 작품은 옥적(견우직녀), 가면무, 부채춤, 북춤, ‘정원의 봄’ 등인데, 이 작품들은 훗날 리틀엔젤스의 초기 레파토리와 여러 면에서 연관된다. 

리틀엔젤스의 초창기 무용지도에 큰 역할을 한 신순심이 박성옥을 초빙해서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다. 박성옥이 1950년대에 부산에서 이뤄낸 성과는, 이제 ‘선화어린이무용단’이라는 이름으로 매우 체계적이고 예술적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박성옥과 선화어린이무용단의 레퍼토리는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최승희와도 상통함을 발견한다. 1931년 신작발표 때 초연한 ‘우리의 캐리커처(caricature)’는 할아버지의 즐거워 추는 춤을 만화(漫畫)적으로 무용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보면 리틀엔젤스의 초기 인기작품 ‘밤길’과 일맥 상통함이 발견된다. 최승희 작품에선 가야금산조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리틀엔젤스의 ‘밤길’은 철금(철가야금)의 연주가 주를 이룬다. 

이 땅의 ‘어린이무용’의 역사는 최승희로부터 시작되어서 박성옥으로 이어졌고, 리틀 엔젤스를 통해 활짝 꽃을 피웠다. 리틀엔젤스의 공연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종교적, 외교적인 면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개별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무용에 사용된 음악(민요)의 소재와, 스토리텔링을 살리기 위한 악기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게 살펴야 한다. 

리틀엔젤스의 초기 작품을 분석한다는 것은, 분단 이후 서로 다른 뿌리에서 성장한 남북의 ‘어린이무용’의 연관성을 살핀다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리틀엔젤스의 창단 60주년이 한국공연예술사에서 전무후무의 어린이무용의 성공사례를 제대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